세상에 좋은 것들은 많기도 하다.

죽기 전에 반이라도 즐겨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스러운 나의 작은 생활들이다.

누군가는 문학을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불렀다.

나는 죽을 만큼은 아니라도, 그 언저리까지는 좋아한다.

안개처럼 마음을 떠도는 불투명한 생각들을 단단한 문장으로 엮어 내리는 것,

누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걸 훔쳐보는 느낌이다.

앞문장과 뒷문장이 서로 필요한 문단을 좋아한다.

작가의 천재성에 놀라는 것을 좋아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보며 경탄하는 것을 좋아한다.

락이 좋고 밴드 음악이 좋다. RHCP를 좋아한다.

너바나를 좋아한다. 지미 헨드릭스를 좋아한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죽었던 많은 사람들이 좋다.

오래 산 음악들, 삼백년 전이든 지금이든 눈물을 흘리게 하는,

언어 이전의 어떠한 의지 혹은 감정,

모호함이 반가울 때가 있다.

말할 수 없는, 잡히지 않고 베이지 않는 것들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영원히 들을 수 있다면 불멸할 것이다.

잘 맞는 사람과 단둘이 두런두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낯가림이 심하다.

그래서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다.

내 모든 것을 터놓고 보여줄 수 있는 상대가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래도 누군가와 같이 대화를 나눠야 한다면, 잘 통하는 사람이 좋다.

나의 냉소에 어설픈 긍정보다는 냉소로 답해주는 사람이 좋다.

세상과 그 자신 사이의 온도차가 있는 사람이 좋다.

많은 사람들과 어긋나는 사람이 좋을 때도 있었다.

내 뜻이 온전히 전달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좋다.

나를 울게 하는 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일 수밖에 없다.

내가 무엇을 잃었을 때 울게 되는지를 보면 내가 얼마나 사랑했었던 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언제 울었나.

죽을 때 까지 많이 울면 좋겠다.

 

 

세상에는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기도 합니다.
저는 듣고, 읽고, 펼쳐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자그마한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여 저를 빚고 있지 않을까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펼쳐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화음이 쌓이고, 박자가 놓고 당겨지며,
흘러가는 시간을 그 순간에 고정시켜주는 신비로움.
나중에 그 음악을 다시 들으며
옛날의 기억을 사게 되는 그 감정이 좋습니다.
여행을 가면 한 도시에 머물면서
계속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향수를 뿌립니다.

나중에 여행을 완성하고 잊고 있을 때쯤
우연히 노래를 다시 듣게 되거나 향을 맡게 되면
그때의 기억이 마음속에 몽글몽글 솟아오릅니다.


힘들 때면 항상 찾아가는 음악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했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나를 더 사랑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에게 많은 힘이 되어준 노래를 다시 듣고 있노라면
‘아 잘 이겨냈구나.’라고 칭찬해 주기도 합니다.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것처럼 스릴 넘치는(그러면 안되지만) 시간을 좋아합니다.
읽으면 먹먹해지는 몇몇 시의 구절,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뜻의 수필(隨筆) 속 생각,
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책을 덮고 나서는 나 자신의 일부가 페이지 속에 남겨진 듯한 열병 같은 느낌을 좋아합니다.

굉장히 천천히 읽습니다.
몇 번을 되새김하며 읽기도 하고 필사를 하며 읽기도 합니다. (그래서 재수할 때 힘들었지만..)
제 아무리 천재 작가라도 글을 쓸 땐 한 글자 글자 꾹꾹 눌러 담았을 겁니다.
꾹꾹 눌러 담은 글은 꾹꾹 눌러가며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두 종류의 일기를 씁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는 일기와 오늘 감정이 어땠는지 적는 일기가 그것입니다.
어차피 일기야 나만의 것이고 읽는 사람도 나뿐인지라 마음 가는 대로 써도 될 법 하지만
안개처럼 뿌옇게 흐린 생각을 글로 적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고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
무엇을 했고 감정이 어땠는지 돌아볼 수 있다는 것.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일기가 주는 힘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건강하며 순편한 지금,

한 글자 글자 꾹꾹 눌러봅니다.